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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 『32℃ 여름』

김현철의 1집과 3집에 관한 이야기를 19년도에 쓴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시티팝의 인기가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나 또한 그 열풍에 발맞춰 수많은, 시티팝이라고 우리가 일컫는 음악을 많이 들었다. 타츠로 야마시타, 마리야 타케우치,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등등. 그 중에는 김현철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한 번쯤 이 시절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 1집과 3집을 다룬 글은 그런 맥락에서 쓰게 된 글이었다. 사실 그 글은 본래 두 음반을 다루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었다. 대중에 널리 알려진 두 음반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2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글을 완성하고 후속작으로 2집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자 했지만 다른 주제의 글을 먼저 써야만 했다...

이야기/음악 2023.01.09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정원은 작은 도시에서 사진사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사진관 앞에는 한 여자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정원은 우연히 학창 시절 첫사랑 지원을 마주치게 된다. 먼 곳에서 살고 있는 줄 알았건만 그녀는 작은 문제가 있었는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지내고 있었다. 정원은 옛 사랑이 떠올라서 괜스레 마음이 퍽 설렜다. 그러나 그 이후 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온 지원은 서먹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뒤 사진관에 걸려 있는 사진을 내려 줄 것을 부탁하였다. 버스에 앉은 정원은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창 너머의 세상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슬픈 낯빛은 아녔지만 그의 눈빛엔 허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때 화면 너머에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

이야기/영화 2023.01.08

어제의 기억으로

여름 휴가기간이면 바닷가를 자주 간다. 더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지구의 기온은 더위를 더 사납게 만들었다. 거기에 장마철의 찝찝한 습도까지 더해지면 냉방 장비 없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여름이 된다. 하지만 감기에 약하고 추운 날이면 차가워진 손발로 고생하는 나는 그런 여름마저도 좋아한다. 너무 더워서 정 못 나갈 법한 날은 시원한 과일 하나 먹고 대나무 카페트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한숨 자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30도를 웃도는, 아니 때로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맞이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이 내 살갗을 파고 들어오는 여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그럴 때 바다가 필요하다. 탁 트인 모래사장 위를 걸어 바다 속으로 몸..

문장/에세이 2023.01.07

파란 서울 버스 502

오늘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502를 탔다. 파란 서울 버스 502는 집 근처 차고지에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다시 돌아온다. 나는 서울을 오갈 때 502를 자주 탄다. 서울을 가는 일은 내게 그리 달갑지 않다. 서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거리는 늘 바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수많은 차들의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모두들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빠르게 흘러간다. 그 거리를 홀로 걸을 때면 수많은 사람이 내 곁을 지나치지만 나만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두 자기 갈 길이 바쁜 서울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애초에 도시와 그리 친한 사람이 아니다. 부모님은 모두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도 도심에서 약간 빗겨 나 작은 산과 논,..

문장/에세이 2023.01.01

과거에 산다는 것

몇 달 전 우연히 ‘집 번호를 준다는 것은’ 이라는 곡을 들었다. 에픽하이가 랩을 하고 린이 노래를 부른 이 곡은,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온 지 14년이나 된 곡이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엠넷 채널을 보다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감성에 젖게 만든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된 느낌이 든다.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편곡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에 떡하니 쓰인 ‘집 번호’ 라는 단어 때문이다. ‘집 번호.’ 라는 단어는 정말 낯설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집 번호를 물어 봤던 게 언제였을까? 집 번호로 연락했던 적은? 그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낯선 일이 되었다. 집 전화는 시골에 사는 할머니댁에서나 보는 물건이 되었다. 혹여 집에 두었어도 그 존재를..

이야기/음악 2023.01.01

아파트 사람들

오늘도 엘리베이터는 조용하다. 나는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괜히 카톡을 확인했다. 우리집이 있는 13층에 도착하기 전까지 엘리베이터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도 있고 멍하니 엘리베이터 상단에 표시되는 층수 표시만 쳐다 보는 사람도 있다. 층수를 알리는 안내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윗집이나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그나마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가령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이 12층을 누른다. 그럼 나는 슬쩍 쳐다 보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 이 사람이 우리집 바로 아래에서 사나?’ 내릴 때 방향을 보며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아파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드물고 설령 마주쳐도 살가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 얼마 전 일이었다. 집에 들어..

문장/에세이 2023.01.01

사람들이 너무 싫어질 때

제대로 글을 쓰지 않은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하반기 내내 고민한 졸업논문도 글이지만 그 이외에 다른 글은 거의 쓰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이어온 연재도 멈췄고 블로그 운영도 안 하고 있다. 연재를 재개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글을 쓸 마음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왜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할 말이 별로 없어서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독자를 상정하는 일종의 말하기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쓰는 것이다. 그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사람들과 그리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할 말도 없었다. 나는 예민한 천성 탓에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지나치게 신경썼고 그 때문에 내 말과 행동에도 크게 주의를 기울였다..

문장/일기 2022.12.29

22.12.07.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된 지 좀 되었다. 가끔 내 안에서 사람들을 향한 혐오감이 일렁일 때 나란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나는 너무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다. 미뤄온 숙제도 끝내고 나름 입에 풀칠도 하고 있다. 이상하다. 이런 감정을 느낀 지는 몇 달 되었다. 나는 늘 내가 1~2년 동안 어딘가로 사라진 것 같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마치 감쪽같이, 먼지처럼, 타노스가 만든 '블립'처럼. 코로나 유행으로 군대에서 사회와 연결될 기회는 많지 않았고 그 속에서 그리움이 깨나 있었다. 내가 알던 곳, 내가 만나던 사람들. 그로부터 벗어난 후 나는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만나려고 연락을 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사람들은 내가 알던 그 사람..

문장/일기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