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5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정원은 작은 도시에서 사진사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사진관 앞에는 한 여자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정원은 우연히 학창 시절 첫사랑 지원을 마주치게 된다. 먼 곳에서 살고 있는 줄 알았건만 그녀는 작은 문제가 있었는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지내고 있었다. 정원은 옛 사랑이 떠올라서 괜스레 마음이 퍽 설렜다. 그러나 그 이후 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온 지원은 서먹한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뒤 사진관에 걸려 있는 사진을 내려 줄 것을 부탁하였다. 버스에 앉은 정원은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창 너머의 세상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슬픈 낯빛은 아녔지만 그의 눈빛엔 허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때 화면 너머에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

이야기/영화 2023.01.08

잠이 오지 않던 밤들 - 로꼬, 『잠이 들어야』

군대에서의 첫날은 기막힌 하루였다. 그때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여러 명이 밀집해서 지내는 그곳의 특성상 방역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나는 약한 기침 증세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솔직히 말하자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곳은 코로나19에 걸렸을지 모를 유증상자를 격리하는 시설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1인 1실 격리를 해야 했다. 하얀 벽에 침대와 책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훈련 교본이 있었다. 널찍한 방에 혼자서 훈련 교본만 붙들고 하루를 보내려니 막막했다. 그래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험악한 인상으로 훈련병을 맞이하는 조교를 마주치지 않았다는 데 만족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진주의 8월 말은 더웠다. 그러나 방은 통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에어컨은 없었고 선풍기 한 대만이 천..

이야기/음악 2022.11.08

어린 날의 영웅들 - Nieve,『風の中のプリズム(바람 속의 프리즘)』

올해 초부터 포켓몬빵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00년대 초중반에 나와 큰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빵을 재출시한 제품이었다. 특히 이 제품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캐릭터와 포켓몬을 위주로 만들어져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포켓몬빵을 찾는 사람이 어찌나 많았는지 ‘우리 가게는 포켓몬빵이 없어요’라는 종이를 붙인 편의점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릴 적 먹었던 맛이 기억나지 않아 먹어 보고 싶었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실물을 보지도 못했다. 엄밀하게 말해 나는 포켓몬스터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때, 소위 무인편이라고 하는 시기를 직접 보고 자란 세대라고 할 수는 없다. 무인편이라고 하니 무척 생소할 텐데 간단히 말해 피카츄가 처음 등장하고 이슬이와 웅이가 함께 다니던 작품이라고 하면 아실 것 같다. 그 작품이 S..

이야기/음악 2022.11.07

우연이 만들어준 인연 - 윤종신,『배웅』

2012년 겨울,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 진도가 다 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율학습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전자사전을 가져와서 음악과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옆자리 친구가 자기도 듣고 싶다고 하길래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었다. 여러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 EBS 라디오에서 멈췄다. DJ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무척 생소한 노래였지만 나와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감상했다. 그 노래는 윤종신의 ‘배웅’이었다. 당시 나에게 윤종신은 가수보다는 방송인에 가까웠다. 팥빙수 노래도 들어 본 적이 있었고, ‘교복을 벗고~’라고 시작하는 노래도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노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찾아 듣는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이야기/음악 2022.11.07

아주 오래된 필름

집에서 필름카메라를 찾았던 지난 6월. 그 카메라 안에는 웬 필름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필름을 모르던 시절이라서 다 쓴 필름인지 새 필름인지 구분하지 못해서 조금 만지작거리다 꺼내두었다. 나중에 새로 산 필름과 함께 냉장고에 두고 잊어버렸다. 지난달 엄마와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이 필름을 보았다. 딱 봐도 요즘 필름 같지 않게 한글로 '코닥 200'이라고 적힌 필름. 현상과 스캔을 어느 정도 알게 된 나는 이 필름이 현상하지 않은 채 남겨진 필름인 것을 알았다. 내 기억으로 06년쯤에는 이미 디카를 썼으니 족히 15년은 더 방치된 필름이었다. "이거 정말 오래된 필름이네요." 현상소 주인이 내게 말했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사진과 사진 사이의 구분도 제대로 안 되고 절반 이상이 다 날아가버렸다. 살아남..

문장/에세이 2022.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