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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ttic
민족 대명절 추석이 돌아온다. 목, 금, 토, 일. 주말을 껴서 나흘밖에 쉬지 못하지만 짧은 휴일은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고향을 오가느라 추석 연휴를 보냈다. 요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귀성길로 인한 교통 체증보다 해외 여행 소식이 익숙하다.우리 집 풍경도 비슷하다. 명절을 집에서만 보낸 지 3년째다. 아버지 고향인 홍천군도 어머니 고향인 보성군도 가지 않는다. 우리가 그곳을 찾던 이유가 사라져서다. 구수한 사투리로 반겨주던 외할머니도 피자를 참 좋아하던 고모도 만날 수 없다.홍천을 가려면 해발 1000m가 넘는 운두령을 넘어야 했다. 아버지 회사 차였던 베스타를 타고 고개를 넘던 시절이 생각난다. 멀미가 심한 나는 늘 검은 봉투를 들고 있거나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게 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42km를 뛴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 끝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운동 직후에 맥주를 들이켜는 일은 드물다. 한참 뛰고 나면 온몸의 수분이 증발해 버릴 듯한 갈증이 찾아 온다. 그 속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물이나 이온음료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 끝에 다시 몸을 허무는 술을 찾는 행위는 어딘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9년 넘게 달리기를 했음에도 운동을 마친 후 ..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쓴 그녀는 후드집업을 입고 서 있었다. 나는 서점 일을 마치고 한달음에 서울까지 달려왔다. 민낯이 부끄러운지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지만 웃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을 보고 웃었다.그녀가 다니는 캠퍼스 앞 써브웨이에서 저녁을 먹었다. 샌드위치와 탄산음료를 하나씩 앞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쌓인 과제로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나온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꾸민 날보다 더 예뻐 보였다. 내가 너무 오래 쳐다본 탓일까. 그 사람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어느덧 10년도 가까이 지난 일이다. 이제 그 사람의 목소리도, 얼굴도 희미하다. 그럼에도 이날은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만난 길이 오르막이었고 써브웨이는 2층에 있었다는 사실까지 또렷히 생각난다. 수원..
2012년 겨울,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 진도가 다 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율학습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전자사전을 가져와서 음악과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옆자리 친구가 자기도 듣고 싶다고 하길래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었다. 여러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 EBS 라디오에서 멈췄다. DJ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생소한 노래였지만 나와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감상했다.그 노래는 윤종신의 ‘배웅’이었다. 당시 나에게 윤종신은 가수보다는 방송인에 가까웠다. 팥빙수 노래도 들어 본 적이 있었고, ‘교복을 벗고~’라고 시작하는 노래도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노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찾아 듣는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윤종신..
김현철의 1집과 3집에 관한 이야기를 19년도에 쓴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시티팝의 인기가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나 또한 그 열풍에 발맞춰 수많은, 시티팝이라고 우리가 일컫는 음악을 많이 들었다. 타츠로 야마시타, 마리야 타케우치,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등등. 그 중에는 김현철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한 번쯤 이 시절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 1집과 3집을 다룬 글은 그런 맥락에서 쓰게 된 글이었다. 사실 그 글은 본래 두 음반을 다루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었다. 대중에 널리 알려진 두 음반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2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글을 완성하고 후속작으로 2집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자 했지만 다른 주제의 글을 먼저 써야만 했다...
군대에서의 첫날은 기막힌 하루였다. 그때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명이 밀집해서 지내는 그곳의 특성상 방역에 더욱 민감했다. 나는 약한 기침 증세가 있었다. 그 사실을 솔직히 말하자 그들은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코로나19에 걸렸을지 모를 유증상자를 격리하는 시설이었다. 그곳은 1인 1실 격리를 했다. 하얀 벽에 침대와 책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훈련 교본이 있었다. 널찍한 방에 혼자 훈련 교본만 붙들고 하루를 보내려니 막막했다. 그래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훈련병을 맞이하는 조교를 마주치지 않았다는 데 만족했다.문제는 밤이었다. 진주의 8월 말은 더웠다. 방은 통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에어컨은 없었고 선풍기 한 대만이 천장의 중앙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
따뜻한 봄날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예약까지 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금요일 아침부터 목이 붓고 몸에 기운이 없더니 저녁 내내 몸져누웠다. 토요일에 일어났지만 몸 상태는 그대로였다. 계획을 엎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요일은 비 예보가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국립현대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까지 간 뒤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시청역까지는 도착했는데 여기서 더 멀리 갈 자신이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던 탓에 원래 계획은 포기했다. 하지만 미술관은 가지 않더라도 글은 써야 했다. 이미 서울까지 나오느라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써버렸기 때문에 뭐라도 가져가야 했다. 그래서 계획도 없이 덜컥 덕수궁에 갔다.시청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앞으로 몇..
4월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겨우내 황량하던 나무에는 벚꽃이 만발한다. 대학에서 만난 낯선 얼굴은 친구가 됐다. 친구뿐이랴 눈이 맞은 학생들은 손을 잡고 꽃길을 거닐고 캠퍼스에는 하하호호 웃음꽃이 핀다. 그 화사한 풍경에서 나는 겉돌았다.스무 살이었던 2015년 4월, 나는 서툴고 완고했다. 예수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다들 쓰는 스마트폰 대신 SK W폰을 들고 다니는 괴짜. 카카오톡을 쓰지 않아 소통도 안 되는 학생. 나는 스스로 섬이 되길 자처했다. 수업을 마치면 사라지기 일쑤였다. 학과 소식을 알아야 할 때만 마지못해 과방을 기웃거렸다.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반항이었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권위에 대들고 반복되는 학교 공부를 따분해 하던 소년. 학생 주임의 눈총을 사면서도 단..
메가박스 VIP가 됐다. 메가박스 VIP가 되기 위해서는 6,000 포인트를 쌓아 프렌즈 등급을 달성해야 한다. 여기서 1만 2,000 포인트를 더 쌓으면 VIP가 된다. 포인트 적립율은 5%로, 영화 한 편당 대략 500~700 포인트가 쌓인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스무 편 가까이 본 셈이다.1년은 열두 달. 스무 편을 12로 나누면 약 1.66이다. 한 달에 한두 편씩 꾸준히 봐야 가능한 수치다. 이 정도면 스스로에게 영화 애호가를 뜻하는 ‘시네필(Cinephile)’이란 칭호를 붙여도 충분하지 않을까?그간 봤던 영화 수백 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봄날은 간다’이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 때면 해마다 이 영화를 찾는다.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동 트는 새벽, ..
사상 초유의 취소쇼를 봤다. 티켓 값을 환불받았음에도 공연장에 가서 콘서트를 보고 왔다.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윤종신은 급성 기관지염에 걸렸음에도 연말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2시간여 공연을 이어갔지만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남은 공연을 취소하고 환불해 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그는 예정된 날에 무대에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관객이 신청한 사연을 읽고 신청곡을 들려주겠다는 것이었다.마지막 날 공연을 예매했다. 공연 며칠 전까지도 취소를 고민했다. 윤종신의 목 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업무가 남은 탓에 주말에도 일할 처지였다. 내게 주어진 원고를 마치지 못한다면 일요일에라도 끝마쳐야 했다. 그런 내게 공연 취소는 희소식이었다. 수수료 걱정 없이도 공연을 취소할 수 있었다.업무를 핑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