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일기

사람들이 너무 싫어질 때

김그린. 2022. 12. 29. 00:20

제대로 글을 쓰지 않은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하반기 내내 고민한 졸업논문도 글이지만 그 이외에 다른 글은 거의 쓰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이어온 연재도 멈췄고 블로그 운영도 안 하고 있다. 연재를 재개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글을 쓸 마음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왜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할 말이 별로 없어서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독자를 상정하는 일종의 말하기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쓰는 것이다. 그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사람들과 그리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할 말도 없었다.

나는 예민한 천성 탓에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지나치게 신경썼고 그 때문에 내 말과 행동에도 크게 주의를 기울였다. 어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내 스스로에게는 꽤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과 교류를 이어가지 않거나 연락을 즐겨 하지 않는 모습 역시 그것이 원인이었다. 그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소화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관계를 적당히 유지하기보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아예 문을 닫고 쉬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런 부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은둔하거나 사람들을 멀리 하는 인상을 남긴 듯하다.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지는 나에게 늘 과제였다. 아예 그만두는 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일시적으로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거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자연인이 되지 않는 한 사람과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간관계에서 제일 어려운 점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싫어하는 말과 행동이 있고, 더 나아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비롯되는 부정적인 감정을 싫어하는 것이 문제였다.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이 내게 상처가 되었던 만큼 타인에게 내 부정적인 감정을 비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그런 감정이 내 마음에서 느껴질 때 불쾌했고 혹여 타인에게 비칠까 봐 무척 주의를 기울였는데 도리어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버린 셈이다.

내 주변의 환경이 변곡점을 지나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며 친한 친구와 연락이 뜸해지거나 아예 끊기는 일이 늘었다. 그간의 세월과 정이 아쉬워 여러 사람 붙잡아 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허탈함과 공허함만 씁쓸하게 남았다. 결국 사람들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부질없고 의미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씁쓸함에, 당장 해야 하는 급한 일에 집중하다 보니 올해 하반기는 예전보다 사람들과 멀리 지내게 되었다. 잠깐이었지만 자주 찾던 인터넷 사이트에 발길이 뜸해졌고 소셜미디어 계정도 닫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에게서 정을 많이 떼어낸 것 같다.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생각해보니 굳이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거나 숨길 필요는 없다는 점을 느꼈다. 어차피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 것 같았다. 갈 사람을 붙잡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내 감정을 지나치게 절제하지 않아도 됨을 알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는 삶은 나쁘지만 그렇다고 숨기는 방식이 좋은 길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감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자기 자랑하는 글이 싫었고 사람들이 어디 맛있는 거 먹거나 여행 가는 이야기를 올리는 것을 보기 싫었다. 연봉 인상 이야기나 취직, 취업 축하 글도 보기 싫었다. 당연히 차나 집에 대한 이야기도 싫었다. 좋아요 숫자와 사람들의 댓글이 신경쓰였다. 읽음 표시도 신경쓰였다. 상대가 내 문자를 읽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했고 반대로 내가 상대의 문자를 꼭 읽어줘야 한다 생각했다. 누군가를 빈정거리는 사람이 싫었고 규칙을 지키지 않고 무례한 사람도 싫었다. 사람들에게 만나자고 하는데 상대가 미적거릴 때 나만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구구절절 이어지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했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싫어하는 것은 그냥 싫어했다. 애써 이해하려 하거나 좋아하려 하지 않았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기의 명예와 부를 자랑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은 족족 차단했다. 내 소셜미디어에 여행 글이나 자랑하는 내용 등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올라오면 숨김 처리를 했다. 나를 팔로우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와 관계가 더 이어지지 않는 사람을 언팔로우하고 카톡에서도 지웠다. 굳이 연락이 오지 않거나 해도 더 이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연락을 더는 이어가지 않고 관계를 정리했다. 차단과 제한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문자를 읽지 않고 소위 읽씹, 또는 안읽씹을 일부러 해보기도 했다.

눈에 띄게 스트레스가 감소했다. 물론 내 인생은 좀 무미건조해졌다. 인터넷을 봐도 별 내용이 없었고 사람들로부터 문자가 아예 오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사람들을 만나는 날도 많이 줄었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좋은 변화 같지 않지만 적어도 내 마음이 편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애를 써도 사람들과 관계는 잘 이어지지 않음을 알았으니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고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 모두 선한 마음이 중요하고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로 인해 불쾌해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나도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인맥을 관리할 시점도 아니고 나중에 내가 필요해지고 나에게 건질 이익이 있다면 어련히 연락이 올 거라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남긴 것은 혹여 나처럼 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못되게 굴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이다.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사람은 아마 천성이 순하고 착할 것이다. 그래서 못된 마음을 담아두다 보니 속병이 나는 셈이다. 세상 좀 못되게 살아도 괜찮으니까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한다. 싫으면 싫다고 욕도 하고 이기적으로 살고 때로는 사람을 좀 괴롭히며 살 수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만큼이나 나 자신도 소중한 법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이 있고 남을 사람은 내 곁에 남아서 나와 인류애를 조금씩이나마 지켜갈 것이다. 그러니 좀 못되게 살아도 좋다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갈까 봐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라고. 너무 힘들게 상처 받고 고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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