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502를 탔다. 파란 서울 버스 502는 집 근처 차고지에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다시 돌아온다. 나는 서울을 오갈 때 502를 자주 탄다.
서울을 가는 일은 내게 그리 달갑지 않다. 서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거리는 늘 바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수많은 차들의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모두들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빠르게 흘러간다. 그 거리를 홀로 걸을 때면 수많은 사람이 내 곁을 지나치지만 나만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두 자기 갈 길이 바쁜 서울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애초에 도시와 그리 친한 사람이 아니다. 부모님은 모두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도 도심에서 약간 빗겨 나 작은 산과 논, 밭이 더불어 사는 공간이었다. 아빠는 저녁을 먹으며 찐 감자로 끼니를 때우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뒷동산을 걸으며 산을 넘어 학교에 갔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말해줬다. 자연스럽게 나는 자연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심심하면 근처 호수를 산책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뒷동산을 돌아다녔다.
자연을 사랑했지만 클수록 서울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자랐다. 집 구석에서만 있던 내게 음악과 미술은 팍팍한 학교 생활을 달래는 취미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교복을 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 나온 음악을 들어보고 알지 못했던 미술 작품을 찾아봤다. 새로운 것을 찾을 때마다 서울은 빠지지 않았다. 멋진 음반을 파는 향음악사는 신촌에 있었고 재밌는 전시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은 덕수궁 뒤편에 있었다. 서울은 집에서 멀어서 쉽게 갈 수 없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결국 고등학생 때 모아둔 용돈으로 음반을 사러 신촌으로 갔다.
신촌은 놀라웠다. 가게, 옷, 책, 버스, 지하철……. 서울에 있는 모는 것이 신기했다. 신촌역에서 나오면 마주치는 홍익문고에는 책이 참 많았다. 경기도에 사는 사람이 이것도 몰랐나 싶겠지만 광고로만 보던 맥도날드 매장을 실제로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장 재밌던 건 역시 향음악사였다. 컴퓨터 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던 음반들이 빼곡히 진열된 매장은 내게 꿈에 그리던 공간이었다.
서울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뒷편에 숨겨진 슬픔이 느껴졌다. 새로움이 가득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숨 쉬는 곳인데 어째 서울은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딘가 머무르지 못하고 빠르게 발길을 옮겼다. 건물도, 사람도 경쟁에서 밀려나면 가차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빌딩숲은 해를 가리고 거리에는 지치면 쉬어 갈 벤치도 몇 개 없었다. 이곳은 숨 돌릴 틈마저 가득 차버린 도시였다.
서울에 놀러 갈 때마다 거리는 달라졌고 전에 보지 못했던 가게가 생겼다. 향음악사는 그 흐름을 견디기에 너무 작았고 내가 대학 2학년일 때쯤 매장을 정리하고 온라인으로만 운영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서울이란 도시의 비정함을, 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그런 모습의 서울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내 꿈이 되었다.
세상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고 서울에 사는 친구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을 찾는 시간도 더불어 늘어났다. 전에 알지 못했던 서울의 지명을 술술 외우고 다녔고 하도 자주 다녀서 거리가 훤하게 그려지는 곳도 생겼다. 서울에서 우정을 쌓고 사랑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서울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었다. 서울은 이전보다 더 부풀어 오르며 많은 이들을 밀어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서울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은 더 커져 갔다. 사람들이 말하는 서울은 꿈과 희망의 도시였다. 누군가는 서울에 수많은 문화시설과 놀거리에서 즐거움을 찾았고, 다른 누군가는 큰 돈을 보고 경제적 가치를 찾았다.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서울에서 살기를 소망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땅값 역시 치솟았다. 사랑하는 것들이 서울에서 자리를 잃고 사라지는 모습을 본 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서울을 달리 생각한 건 파란 서울 버스 502를 타면서부터였다. 몇 년 전 차고지가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502는 우리 집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502를 즐겨 탔다. 즐겨 탄다는 말이 빠른 길이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502는 나를 집 앞에 내려주지만 그리 빠른 버스는 아니었다. 종로에서 출발하면 집까지 가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스마트폰을 암만 꼼지락거려도 한세월이라서 창가에 기대서 잠을 청하거나 바스 안팎을 두리번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버스 창문으로 바라보는 서울은 퍽 흥미롭다. 그 파란 버스는 서울 중심을 거쳐간다. 남대문 회차 지점에서 타면 서울역, 갈현동, 국립중앙박물관, 동작대교, 그리고 사당까지 서울 한복판을 버스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버스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생기가 느껴졌다. 데이트를 마치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얼굴에 띤 채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보는 사람, 친한 친구와 껄껄 웃으며 전화하는 사람. 행복한 모습으로 서울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 내 마음까지 즐거웠다. 물론 늘 밝은 얼굴만 있는 건 아니었다.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버스를 타는 사람,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해서 피곤이 눈가에 잔뜩 쌓인 학생도 있었다. 나처럼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사람도 보였다. 그 모든 얼굴이 나에게 서울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공간임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알던 서울은 각자 먹고 살기 바빠서 차가워진 도시였고, 약하면 자리를 잃고 사라져 버리는 비정한 도시였다. 그 속에서 사람들도 다들 냉담해졌으리라 믿었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본 모습은 달랐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버티는 사람들에게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표정이 없었던 건 너무 살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버스에서 본 사람들은 얼굴에서 기쁨이, 슬픔이, 힘겨움이 살며시 떠올랐다. 그 흔적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서울은 날이 갈수록 더 냉정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아등바등 버티는 일마저도 너무나 벅찬 세상이 되었다. 내가 버스에서 본 사람들이 얼마나 서울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버스에 기대어 잠시 하루의 노곤함을 잊는 순간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그나마 사람 냄새 나게 만든다. 그 작은 순간마저 없다면 서울에서 버티는 일은 너무나 버거울 것 같다.
오늘도 파란 서울 버스 502는 달린다. 이 파란 버스는 그저 서울을 오가기만 하는 게 아니다. 버스는 도시의 때가 묻기에는 아직 푸른, 사람들의 꿈을 싣고 달린다. 그래서일까? 이 버스에게는 파란 색깔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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