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기간이면 바닷가를 자주 간다.
더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지구의 기온은 더위를 더 사납게 만들었다. 거기에 장마철의 찝찝한 습도까지 더해지면 냉방 장비 없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여름이 된다. 하지만 감기에 약하고 추운 날이면 차가워진 손발로 고생하는 나는 그런 여름마저도 좋아한다. 너무 더워서 정 못 나갈 법한 날은 시원한 과일 하나 먹고 대나무 카페트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한숨 자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30도를 웃도는, 아니 때로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맞이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이 내 살갗을 파고 들어오는 여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그럴 때 바다가 필요하다. 탁 트인 모래사장 위를 걸어 바다 속으로 몸을 담그면 시원함이 마음 속까지 스며든다.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바닷가라고 늘 좋지만은 않다. 신나게 물놀이를 하다가 나와 바닷가를 둘러보면 이따금 내 눈가를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바닷가에 놀러 온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휴가철에는 쓰레기가 몇 톤씩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쓰레기 처리를 위해 각자가 노력하더라도 버리는 사람이 줍는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쓰레기를 정리하는 데에는 택도 없다.
쓰레기로 인해 지구가 오염되었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줄기차게 나왔다.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에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시작된 ‘지구의 날’은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그린피스를 롯해,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단체나 사람이 점차 늘었고 이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환경 보호는 운동가들만 공유하는 사안이 아닌 사회 일원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환경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이 환경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치고 그 정도는 지금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가령 수도권의 쓰레기 대부분을 책임지는 매립지가 2025년 문을 닫아서 쓰레기 처리를 두고 여러 고민이 오가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연 우리가 얼마나 환경 보호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당위성이야 누구든 알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조금이나마 실천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면 허울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내가 말한 실천은 거창한 환경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소에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것도 환경에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단순하고 작은 이 실천도 누군가에게 귀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 근원에는 이기심이 있다. 누구든 더 편리한 삶을 누리길 바란다. 환경을 생각지 않는다면 그런 삶은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챙기기 귀찮다는 이유로 텀블러를 뒷전에 두고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1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익숙하다.
바닷가에 잔뜩 버려진 쓰레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름 휴가로 바다를 찾은 사람들은 피곤한 일상과 찌는 듯한 무더위로부터 벗어나 즐거움을 느끼고자 한다. 하지만 내 즐거움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바닷가에서 먹은 치킨과 음료를 제대로 치우지 않고 가고야 만다. 나의 즐거움과 편리함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가져온 쓰레기를 바다에 방치하는 잘못으로 이어진 것이다.
순간의 즐거움을 찾으려다 놓아버린 수많은 문제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그 즐거움마저도 뺏는다.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 순간이지만 오염으로 망가진 바다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플라스틱 빨대가 콧구멍에 박혀 피를 흘리는 거북이, 비닐봉지로 인해 복막염을 앓다가 죽은 고래. 우리가 무심결에 버리고 간 쓰레기는 바다 생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분해된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하는 플랑크톤에서 시작해 먹이사슬을 따라 점점 바다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된다면 먼 미래에 우리는 푸른 바다의 고운 빛깔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올해 여름도 지자체는 바닷가에 버려진 몇 톤의 쓰레기를 버리느라 애를 먹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여름마다 반복될까. 아름다운 바닷가를 누리는 일만큼이나 바닷가를 지키려는 노력 역시 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여름날 푸른 바다는 그저 어제의 기억으로만 남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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