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기

Step 2. 스마트폰 없이 휴일을 보내기

김그린. 2022. 4. 4. 14:43

스마트폰 없이 시간을 보내는 가장 쉬운 길은 더러워진 방을 청소하는 것이다.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eyeliam/2290688775

불필요한 어플을 지워 보자. 여기서 불필요한 어플을 선택하는 기준은 꽤 과감하면서도 꼼꼼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 나는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겪는 주된 문제점을 추리고 이에 맞게 스마트폰 생활은 개편하려고 했다. 흔히 쓰는 카카오톡도 지웠고 - 대신에 문자와 PC 카톡을 활용 중이다 - 크게 도움되지 않는 어플은 싹 다 지웠다. 은행 어플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어플은 남겨 두었다. 그 결과 대략 15개 정도의 어플만이 남았다. 이 정도면 한 달 생활 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합리적으로 고민하여 내린 결정이었지만 심심해질 때면 스마트폰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멍하니 있다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잠시 살펴 보기도 했다. 물론, 남은 어플도 거의 없었고 웹브라우저는 사용 시간을 제한하여서 많이 사용할 수도 없었다. 몇 번 만져 보다가 내려 놓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마저도 질리기 마련이다. 과감하게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자, 이제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스마트폰과 함께라면 지루할 틈 없었던 하루가 길게만 느껴질 것이다.

우선, 모두들 나처럼 스마트폰을 서랍장에 넣는다. 사람은 시각에 취약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듯, 반대로 눈에서 가까워지면 마음에도 가까워지는 법이다. 눈에 밟힐 때마다 괜히 만지작거리게 되고 지웠던 어플을 다시 설치하고 하루만에 모든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 테다. 혹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지 않는가? '혹시 중요한 문자나 전화가 올지 몰라.'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정 걱정이 많이 된다면 어느 스마트폰에나 있는 방해 금지 모드를 켜고 중요한 연락처만 연락 가능하도록 설정해두면 된다. 서랍장에 하루 종일 넣을 일은 없다. 몇 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놓는다고 큰일이 생기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의 지속적인 자극에 지나치게 익숙해졌을 뿐이다.


스마트폰을 주변에서 치웠다면 시간을 채워 볼 차례이다. 의미 있는 여가 생활을 늘리면 좋다. 날이 좋다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잠시 산책을 다녀와도 좋다. 스마트폰 없는 외출을 처음 겪는다면 매우 어색하다. 뭔가 허전하고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깥 풍경과 사람들 소리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내 스마트폰의 존재를 잠시 잊을 수 있다. 몇 번에 걸쳐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처음이 힘들 뿐 하다 보면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스마트폰을 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풍경과 공기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청소 중 찍은 사진이다. 깨끗하지는 않지만 평소에 이 정도로 더럽게 살지는 않는다...

밀린 청소를 해도 좋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맞은 첫 주말에 밀린 책장 청소를 하였다. 2월 말에 전역하였지만 3월 말이 되도록 쌓인 짐을 정리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 안 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1년 8개월 정도 군 생활을 하며 매달 한 권씩 책을 구입하였다. 군대에서 번 돈을 나름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한 길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좋았지만 막상 집에 가져 오니 책장에 자리가 없어 여러모로 곤란했다. 어찌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상자에 담긴 책을 한 달 가까이 방치했다. 청소하려면 진작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게으름이 문제였다.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더러운 내 방을 제일 먼저 찾았다. 이 김에 끝장을 보자는 각오로 임했다. 책장에 있는 책을 모두 끄집어 내고 책장을 닦았다. 그 이후 책을 분야별로 간략하게 분류하여 배치하였다. 제일 밑은 스포츠, 기타 총류. 두 번째 칸은 문학이, 세 번째 칸은 철학 전공 서적, 네 번째 칸은 비문학 서적을 배치하였다. 마지막으로 맨 위 칸은 패션, 영화 등 예술 서적이 차지했다. 옆에 작은 책장은 음반 보관함으로 활용하였다. 아이돌, R&B-힙합, 락-전자 음악, 그리고 디지팩 등 특수한 음반으로 분류하였다. 글로 쓰면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책이 상당히 무거운 관계로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힘든 일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다들 평소에 충분히 할 수 있었거나 이미 진행했어야 하는 일이었음에도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소모하며 이 날 저 날 미룬 일이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넣어 둔 날은 그런 일을 진행하기에 아주 알맞다. 망가진 물건을 고쳐도 좋고 읽고 싶어서 샀지만 여태 읽지 못한 책을 읽어도 좋다. 혹시라도 스마트폰이 너무... 너무 보고 싶다면 한 번쯤은 꺼내 볼 수 있다. 약속할 수 있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볍게 그간 못 본 영화 한 편을 IPTV나 OTT 서비스로 시청해도 좋고 한 주간 뉴스를 태블릿 PC로 보아도 좋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을 디지털 없는 삶이 아니라 디지털을 올바른 방법으로 이용하는 삶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