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새로운 기준과 규칙을 디지털 생활에 도입함으로써 이전의 무질서함에서 벗어나는 데 목적이 있다. 문제는 그 기준을 수립하기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너무 모호하면 어기기 쉬워진다. 반대로 지나치게 엄격하면 그만두고 싶은 유혹에 약해진다. 충분히 지킬 수 있되 적당한 선을 잘 찾아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적당한' 지점을 찾는 일 역시 어렵다. 우선 현재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나는 내 스마트폰 생활 중에서 다소 지나치다고 느낀 부분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 TV 시청 중 잦은 스마트폰 확인.
- 외출 시 이어폰을 착용하고 음악을 늘 듣고 있음.
- 피트니스 어플 속 걸음 수를 예민하게 확인하여 늘 스마트폰을 소지함.
- SNS 게시물 업로드 시 '좋아요' 여부를 자주 확인함.
- 식사할 때 스마트폰을 옆에 꼭 두고 있음.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겠지만 지금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 정도로 추릴 수 있다.
1) 내가 TV에 오롯이 집중한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 혼자서든 가족과 함께 있든 언제나 내 오른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여져 있었다. 오른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불안했다. 내 곁에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으면 무척 당황스러웠다. 온 방구석을 찾아서 내 손에 쥐거나 내 곁에 두어야 안심되었다. 스마트폰의 목적은 궁금한 부분을 찾아보거나 아무 이유 없이 웹서핑을 하는 것이었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모르는 내용을 확인할 때면 도움이 좀 되는가 싶지만 TV를 보는 것도 아니요, 스마트폰을 하는 것도 아닌 요상한 형태였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이도저도 아니었다. 컴퓨터 사용 중에도 이 현상은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컴퓨터를 할 때 스마트폰을 옆에 두면 능률이 극도로 하락했다.
2) 이어폰은 내 상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자주 쓴다. 쓰는 시간보다 쓰지 않는 시간이 짧을지 모른다. 외출 시 이어폰이 없으면 허전하고 인파 속에서 이어폰을 쓰지 않으면 강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어폰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해야 마음이 놓였다. 친구 중에는 사회공포증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음, 일종의 사회공포증 같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병적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3) 걸음 수에 집착한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열어서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한다. 걸음 수가 부족하면 어떻게든 걸음 수를 채운다. 나는 러닝을 즐겨하는데 이 역시 늘 스마트폰을 챙겨서 기록을 재면서 한다. 가끔 내가 운동할 때 필요해서 스마트폰을 쓰는지 아니면 스마트폰 어플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물론, 어느 방향이든 운동을 해서 좋긴 한데 운동도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 스마트폰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니 조금 찝찝하다.
4) '좋아요' 버튼에 예민하다. 평소에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누구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지 누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렀는지를 상세하게 찾아보고 반응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글을 올렸을 때 좋아요 수치만큼 반응을 확인하기 좋은 도구가 없었다. 한두 번 정도면 이해할 수 있지만 없는 어플까지 설치하며 틈틈이 확인하는 것을 보면 '좋아요' 수치에 내가 심각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5) 나는 혼자 식사하는 일이 잦다. 현재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마땅한 일도 없고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여파로 외출 역시 타인과 접촉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자 하기에 밖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 편이다. 혼밥을 할 때 적적하고 심심한 느낌을 지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식탁에 스마트폰을 올려두고 못 보던 기사나 웹서핑을 하곤 한다.
우선 집에서는 스마트폰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다. 꼭 스마트폰을 집에서까지 챙겨야 할 필요는 없었다. 툭하면 하던 웹서핑도 급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정 필요하면 기억하거나 메모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가족과 TV 시청을 하거나 밥을 먹는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 들여다 보지 않도록 메신저 앱과 SNS 앱은 전부 제거하였고 스마트폰으로는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밖에서 음악을 듣지 않기란 나에게 큰 제약이었다. 아무리 내 일상에서 과한 부분이라지만 아예 제약을 둔다면 도리어 잘 지켜지지 않을 것 같았다. 스트리밍 어플을 아예 제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은 약속을 만들었다. 대중교통과 도보 이동 시에는 음악 감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음악 감상은 집에 있을 때나 카페, 도서관처럼 실내 장소에 들어 왔을 때만 하는 것이다. 애초에 도보 이동 시에 음악 감상은 안전에 위험한 요소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에서도 들을 법하지만 그렇게 듣다가 중독처럼 오래 듣기도 했고, 웬만한 경우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많기에 대중교통에서 듣기 시작하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피트니스 어플은 과감하게 다 지웠다. 필요가 없었다. 걸음 수에 맞춰서 걸을 필요도, 꼭 러닝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운동할 때만큼은 확실하게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내게 산책과 운동은 본래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져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목적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그래서 피트니스 어플은 다 지웠다. 대신에 디지털 시계를 꼭 차고 나갈 생각이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혼밥이었다. 과연 혼밥 때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어떻게 적적함을 달랠 것인가. 일단 집에서는 라디오를 듣기로 했다. 라디오라도 틀어두고 잠시 적적함을 달래는 식이다. 문제는 외출 시인데 그건 아직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한다. 그냥 무턱대고 버틸지 아니면 제한된 선에서 허용할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위에 언급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은행 어플의 경우 최근 은행 업무가 인터넷, 모바일 환경으로 많이 변경됨에 따라 다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리 자주 사용하는 편도 아니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삭제하지 않고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한다. 가계부 어플은 알림을 끄고 저녁 시간대에 몰아서 입력하기로 했다. 한꺼번에 입력해도 별 문제는 없는 부분이었다. 정말 필요한 멤버쉽 어플을 제외한 여타 어플은 (기본 어플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다 지웠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기로 한 마당에 어차피 있어도 활용할 만한 상황도 드물고 남겨둘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의 사례를 이렇게 나열한 것은 하나의 예시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나 역시 정교하게 규칙을 만들지는 못했다. 글의 분량을 고려하여 언급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그러니 규칙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보다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기준을 두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면 좋겠다.
사실 규칙에 있어 정교함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내가 얼마나 그것을 잘 지킬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규칙을 정리하는 방향이 제일 먼저이다. 그 다음 규칙을 내가 잘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욕이 넘쳐서 너무 많은, 또는 강한 규칙을 만들면 작심삼일에 그치기 마련이다.
또한,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한 삶을 살아온 만큼 갑자기 며칠만에 이전의 습관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것은 요행에 불과하다. 그만한 노력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그러니 규칙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거나 갑자기 규칙 이외의 상황이 발생하여 스마트폰을 많이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 크게 괘념치 않는 편이 좋다. 그런 날은 그러려니 하고 본래 취지에 집중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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