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세이

서울이라는 공간

김그린. 2018. 12. 23. 01:43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 대학 이외엔 밖에 나갈 일이 좀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영화를 보러,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 때론 아무 이유 없이, 서울로 가곤 한다. 좋아하진 않는다. 그곳은 끝없이 팽창하고 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를 풍선 같다. 수많은 사람과 건물. 지하철을 타며, 다리를 건널 때, 저 멀리 보이는 도로의 빽빽한 차들을 보며, 내 숨이 막힐 것 같다. 많은 사람을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서울은 그런 삶을 느끼기엔 너무 바쁘고 빠르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렇게 팽창하는 와중에, 그 팽창을 견디지 못해 사라진, 빠른 팽창에 밀려나고 사라져 버린, 또는 사라져 버릴 것들이 있다. 고등학생 때, 추운 손을 호호 불며, 먼 길을 달려 찾아갔던,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흘러 넘치던 신촌의 향음악사. 그곳처럼 더는 팽창하는 서울에서는 머물 자리가 주어지지 않아,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동반되는 인간의 삶처럼, 인간의 손이 닿은 문명도 어느 순간엔 그 자취를 감추게 되리란 사실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죽음의 필연성을 알아도, 매번 그 앞에서 미끄러지며 슬퍼하는 인간이기에 사라지는 것들을 보며, 처연하고 슬픈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땅값, 가치, 수익. 그런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

그래서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작은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는다. 그것이 담고 있던 기억, 흔적, 그리고 빛을 카메라 안에 담는다. 아니, 잡아 둔다. 언젠가 물리적으로는 사라질지라도,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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