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음악

Alone Again (Naturally)

김그린. 2019. 5. 30. 16:09

1)

사랑이나 우정을 이야기하는 노래만큼 홀로 놓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도 많습니다. 물론 혼자라는 말을 그 자체로 쓰기보다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요. 그 중의 대다수는 사랑하는 이와 – 어떤 이유이든 간에 – 헤어져서 혼자가 된 이야기입니다. 내가 스스로 택한 헤어짐이든, 나의 의지와 하등 무관한 헤어짐이든, 노래 속 화자는 마치 우리는 원래 혼자가 아니었다는 듯이 굴죠. 마치 언제나 누군가 곁에 있었고, 혼자라는 상황은 그로부터 박탈되었거나 탈출했거나 하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래 혼자였는지, 아니면 혼자가 아니라 늘 누군가와 이어져 있는지, 이런 심오한 존재의 물음은 차치합시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닙니다.

혼자가 된 순간을 이야기하는 노래들은 어떤 감정과 느낌을 담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로움입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일터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고객과, 같이 일하는 동료 같은 단기적인 관계부터 수십 년을 함께 하는 가족, 친구와 같은 오랜 기간 지속되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관계가 주는 여러 이점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힘든 순간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식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관계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앗아가고,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필요로 하면서도 관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죠.

그럴 때 관계로부터 벗어나면 우리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노래가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해 노래합니다. 일상 속 모든 관계를 벗어던지고 저 멀리 떠난다는 여름 휴양지에서 들릴 법한 여름 노래는 아주 흔하고, ‘너와 헤어지고 싶었는데 헤어져서 참 좋았다!’ 이런 식의 활기찬 이별 노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래는 대개 혼자 있음을 그 자체로 생각하기보다는 관계의 부정적인 상태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있음의 의미는 관계로부터 벗어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다시 말해 이들은 혼자 있음이 기쁜 게 아니라, 관계로부터 벗어나 있음이 기쁠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혼자 있음을 노래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함께 있지 않음’을 노래하는 셈이죠.

그럼 나머지 하나를 살펴봅시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인 외로움입니다. 혼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외로움을 느끼는 건 아닙니다. 저처럼 혼자 있는 상황에서 되려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것이 꼭 혼자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외로움은 혼자와 가장 많이 관계되는 단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래에서 이야기하는 외로움의 종류는 사뭇 다양합니다. 누군가와 헤어진 후 느끼는 외로움도 있을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습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자유로움과 그저 반대 편에 놓인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관계를 그리워하거나, 관계를 갈구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로움을 소재로 한 곡이 갖는 차별점은 혼자 있는 상황과 그 감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감정이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좌절로 드러날 때도 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면으로 승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2)

‘Alone Again, Naturally’는 1972년 길버트 오설리반이 발표한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죠. 제목은 낯설겠지만 노래를 듣자마자 ‘아, 이 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영화 속 사운드트랙, CF 배경음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팝송이 대개 그렇듯 익숙한 멜로디에 비해 노래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잔잔하지만 경쾌한 멜로디, 그리 슬프지 않은 목소리, 밝은 곡의 분위기. 곡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는 이 곡이 슬픈 내용을 다루는 곡처럼 느껴지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이 곡의 가사는 인터넷에서 쓰이던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슬픕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슬픔을 알리기 위해 근처의 탑에 가서 몸을 던져버리겠다는 이야기로 곡은 시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신부가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남자가 참 딱하다며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며 떠나갑니다. 어제만 해도 기대로 가득차있던 그는 어느샌가 현실이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자신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은 왜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로 할 때 나를 돕지 않는가 물으며 신을 원망합니다.

여기까지가 1, 2절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슬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슬픈 모습을 보며 남자를 어머니를 위로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매우 거대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위로를 듣고도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마저 떠나보내고 남자는 혼자 남아서 하루 온종일 웁니다. 그리고 남자는 읊조립니다. “또 다시 혼자예요, 당연하게도. (Alone again, naturally.)”

경쾌한 멜로디 속 이렇게나 처참한 이야기가 있었을 줄 쉬이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영화나 CF 속에서는 이런 가사의 내용과 다른 분위기의 장면에서 쓰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가수는 의도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것이 이 곡의 큰 매력이고, 우리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주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일은 늘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한동안 무기력한 상태로 멍하니 있거나, 심하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합니다. 이 노래 속 주인공도 그렇습니다. 마음만 같아서는 탑에 올라가 자살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죠.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래도 계속됩니다. 여자에게 차여도,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그것이 너무나 나에게 강한 고통과 외로움으로 다가올지라도, 우리의 삶은 계속됩니다. 밤새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울다가 잠이 들기도 하겠지만, 잔인하게도 내 마음과는 너무나 다르게 시리도록 환한 햇빛이 창으로 들어오지요.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또 다시 혼자예요, 당연하게도.”라는 구절은 너무나 슬프고 외로운 현실에 대한 주인공의 체념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당연하게” 찾아오는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비롯한 수많은 이별로 인해 우리는 혼자가 되겠지만, 그렇게 혼자가 되어도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인 거죠. 그래서 길버트 오설리반은 이렇게 노래를 밝게 만든 것이 아닐까요. 크고 작은 비극이 만든 헤어짐은 끝없이 반복되고, 그렇게 우리는 늘 혼자로 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겠죠.

그렇게 보면 우리는 산다기보다는 살아지는 것 같네요. 우리로 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관계가 망가지는 일은 삶 속에 빈번합니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 속에 버려졌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런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은 처음에는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놓아버립시다. 비겁한 일이 아녜요.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 다시 삶을 새롭게 살 수도 있죠. 그리고 이전에 실패한 순간과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맞이 했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자기합리화지만 괜찮습니다. 또 다시 하루를 보내는 거죠,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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