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음악

참, 잘 했어요 - 윤종신, 『잘 했어요』

김그린. 2022. 10. 3. 12:10
“정말 견디기 힘든 지난 한 해였다. 일은 일대로 풀리지 않고 가슴은 답답하고. 그런 모든 고민들을 털어놓고 얘기 나눌 사람은 이미 나를 떠난 지 오래고. 잊으려고 여러 사람 만나 보기도 하고 좋아하려고 사랑하려고 애써봤지만 그럴수록 내 자신이 민망하고 창피하고. 그런 99년을 하루 남겨두고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냥 그렇게 잊어가는 것 같았는데. 멍하니 처음 만났던 청담동 카페 근처를 이리저리 돌다가 성진이 형 스튜디오를 찾았다. 혼자서는 그날을 보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술 기운이 어느 정도 올랐을 때 난 태어나서 가장 서럽게 울어댔다. 멍청하게, 볼품없게, 지저분하게. 내 가사 속에선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애썼던 그 눈물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00년 4월 1일, 이소라의 프로포즈)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예전에 다음 뮤직에 올라온 ‘한국 발라드의 가장 찌질한 순간 Top 10’이라는 글이 있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얼마나 찌질한지 보여주는 곡들이었고 그것을 소개하는 글마저도 짠내가 진동하였다. 그 곡들의 정점에는 단연 윤종신이 있었다. 1등은 윤종신의 ‘나의 안부’였는데 그 곡은 헤어진 연인에게 묻지도 않은 자기 안부를 혼자 중얼거리는 내용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찌질한 노래는 ‘나의 안부’가 아니라 ‘잘했어요’다. 나와 헤어지길 잘했다고, 내 생각 떠올리지 말라고, 나 때문에 늦게 만나게 된 그 사람과 행복하라고.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예전에 헤어지고 이 노래 들으면서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가사가 너무 처절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윤종신의 실화였다. 과거 만났던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99년 12월 30일에 듣고 다음 날 쓴 가사라고 한다. 가사를 쓰며 슬픔을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담은 것이 오롯이 느껴진다. 4월 1일 자 이소라의 프로포즈에는 뒷이야기를 소개한 후 노래를 불렀는데 중간에 가사를 놓칠 만큼 울컥하는 모습이 보인다. 너무 내 이야기라서 타이틀곡으로 삼지 않았다고 한 이야기를 이해할 것 같다. 차오르는 옛 생각에 차분히 노래를 부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윤종신의 노래에는 이런 구질구질한 구석이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은 남의 노래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장면처럼 스며든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며 너무 우울하고 무너지게 되는데 그렇게 나 자신이 불쌍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자주 듣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권하기에는 찌질의 정도가 선을 넘는 경우가 많아서 나 혼자 조용히 들으며 좋아한다. 

가수라는 직업은 참 슬퍼 보인다. 내가 겪은 일을 가사에 담고 그 노래를 여러 차례 부를 때 그 감정은 과연 어떨까? ‘잘했어요’ 같은 슬픈 노래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설령 기쁜 일로 쓴 가사라 해도 마지막은 슬프게 끝났을 때도 있었을 때 그런 기억을 안고 기쁜 노래를 부르면 더 슬프겠지. 나는 글을 쓸 때 프로처럼 기술적으로 쓸 줄 몰라서 내 진심을 다한다. 진심을 다하다 보면 가끔 너무 슬픈 이야기를 쓸 때가 있다. 내게 너무 힘든 일이어서 처절하게 내 마음을 긁으면서 쓰는데 다 쓰고 글이 잘 나와서 마음에 들면 속으로 반색하는 내 모습이 웃길 때가 있다. 내 인생을 드러내는 삶이 지닌 맹점이다. 글을 쓸 때마다 나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인데 그 힘든 과정을 즐겁다며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잘했어요’처럼 슬픈 실화가 담긴 노래를 20년이 지난 지금 부르는 윤종신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하다. 윤종신과 헤어지고 결혼했다는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지낼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2년 전에 쓴 처연하고 슬픈 글은 비공개로 남겨두고 쉬이 찾아 보지 못하는데  슬픈 기억이 담긴 노래를 콘서트에서 부르고 사람들에게 사연을 이야기하는 그는 정말 프로다.


p.s.

이 노래가 나온 지 20 여 년 뒤에 정준일이 월간 윤종신을 통해서 리메이크를 했다. 윤종신의 노래가 처절하고 슬펐다면 그의 노래는 조금 더 감정을 실어서 불렀지만 분위기는 조금 더 담담해졌다. 가사도 몇몇 부분이 수정되었는데 덕분에(?) 원곡의 비참함은 조금 덜어낸 듯하다. 특히 이별한 이후 혼자서 밥을 차려 먹는 모습을 조용히 다루고 있는 뮤직비디오는 볼 때마다 좋다.

괜스레 적적하고 외로운 날이면 이 영상을 틀고 밥을 먹는다.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서 나는 너 없이도 아주 잘 살려고 한다고 스스로 말을 해 본다. 최근에 헤어진 것은 아니다. 솔로이기에 그저 헤어졌을 때의 감정을 오롯이 끌어와서 아주 슬픈 행색을 만들어서 노래를 느껴보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