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영화

(미완성) 들어가는 말

김그린. 2019. 2. 7. 01:31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은 아마 ‘그것을 왜 좋아하는가.’이다. 이 질문은 분명히 쉽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아무래도 다른 일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여도 싫은 것에 대해 말할 때보다 조금 더 편안할 것이다. 그런데 잘 와닿지 않겠지만, 이 일은 또한 분명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와 나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취향을 상대방이 조금이나마 동의하길 으레 바란다. 그 이유에 있어서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그러한 문제에 대답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상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은 어렵다. 왜냐하면 아무런 말이나 해서는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한다 해서, 그 음악을 따라 부른다고, 혹은 열심히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고, 상대방이 나의 선호에 동의하거나, 나의 선호를 따라가진 않는다. 그냥 ‘아 그렇구나.’ 생각하는 데 그칠 것이다.

가장 적절한 예는 나의 비틀즈 사랑일 듯싶다. 고등학생 때, 정말로 비틀즈를 많이 좋아했다.단순히 비틀즈의 음악을 찾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점심 시간만 되면, 학교 도서실에 가서 비틀즈와 관련된 책을 보았고, 집에서도 비틀즈 음악을 틀어 놓고, 비틀즈에 관한 글과 영상을 찾아 보는 수준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1968년에 발매된 비틀즈의 ‘The Beatles’에 관해 말해보라고 하면, 음반의 트랙을 줄줄 말할 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과 당시 비틀즈의 상황에 대해서까지 설명해줄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독후감 한 페이지는 그렇게 쓰기 어려웠어도, 비틀즈에 관해 쓰라고 하면 20페이지도 썼을 것이다. 정말 심각할 정도로 비틀즈를 탐닉하던 고등학생 때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비틀즈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특히 그 덕질의 가장 큰 희생양은 엄마였다. 저녁에 밥을 먹다 말고, ‘엄마, Let It Be’ 알지? 그 노래가 말이야….’ 라며 ‘Let It Be’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던 아들을 보며, 엄마는 아마 내가 지금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었을 것 같다. 하여튼 그렇게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비틀즈에 대해 말할 때마다 재밌긴 한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엄마는 뭔가 딴 생각을 하는 듯한 눈치였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는 Let It Be는 알아도, 비틀즈의 멤버가 누군지, 그 곡이 언제 나왔는지에 관해서는 하등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마 내가 백날 비틀즈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아, 비틀즈는 참 좋은 가수구나.’하는 정도에 그쳤으리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느끼는 어려움은 바로 내가 비틀즈를 엄마에게 소개할 때의 어려움과 같다. 내가 대상을 너무나 좋아한다 해도, 그 마음만으로는 상대방 역시도 그것에 대해 좋아하거나, 아니면 나의 이야기에 동의를 하는 데까지 이끌 수 없다. 특히 글을 쓸 때, 그 어려움은 더욱 선명해진다.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 때문에 좋아하는지에 대해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유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아마 이러한 논의 전개가 더욱 정교해진다면, ‘비평’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이 왜 어려운가를 이야기한 이유는 앞으로 내가 다룰 소재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연재 대상은 ‘영화’다. 그럼 당연히 ‘영화를 왜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이 뒤따라 나올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으니까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분명히) 나온다. ‘영화가 왜 재미 있죠?’ 그러게 말이다. 왜 재밌을까. 앞으로 쓸 여러 편의 글은 ‘영화를 왜 좋아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자, 영화를 통해 어떤 재미를 느꼈는지에 대해 나누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고민을 좀 오래했다.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영화는 그러한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놀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은 꽤나 꺼림칙했다. 이도 저도 아닌 인상비평과 한 줄 평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럴싸한 비평을 쓸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영화를 감상했지만, 그에 대해 글을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소개하는 글을 쓰는 일은 상대방에게 주는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나 자신에게 있어 영화에 대한 감상을 풍부하게 하는 좋은 기회이다.

우선,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 관해 이야기한 후, 몇몇 영화나,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 글을 써볼 예정이다. 그러한 전체적인 과정이 ‘영화를 왜 좋아하는가’하는 앞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번 글은 다소 무거웠던 그동안의 글과 달리, 이번엔 로맨틱 코미디처럼 편안하고 재밌게 써보고자 한다. 심각한 글은 조금 제쳐놓고, 재미를 주고 싶다. 어차피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너무 우울하고 무거울 필요는 없으니까. 또한,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내가 쓰는 글을 읽고, 내가 좋아했던 영화에 대해서, 혹은 내가 아쉬움을 느끼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통해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좀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