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단맛은 기억에 잘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아마 내가 그리 단맛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탕, 초콜릿에 큰 관심이 없었고, 단 음식은 내가 굳이 사서 먹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 또한 이유가 상당히 불명확하고,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희미하지만, 구태여 추측해보자면 어머니가 차려준 식단이 한식, 그 중에서도 나물과 김치 위주의 식단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애들은 싫어하던 학교 식당 음식도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오이만 빼고 말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하게도 기대에서 비틀어진 단맛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나,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나, 72%인지 몇 프로인지 모르겠지만, 카카오 함량을 전면에 내건 초콜릿이 등장했다. 숫자가 커지면 더 맛있어지거나, 더 좋아지리란 기대를 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그 초콜릿은 다른 초콜릿에 비할 수 없는, 아주 뛰어난 맛을 지녔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입안에 초콜릿을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무너졌다. 아니, 정녕 이게 초콜릿이란 말인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쓴맛과 텁텁한 느낌이 입안을 휘감았다. 단맛이 전달할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다리던 얼굴의 근육은 일순간 경직되었고, 곧이어 눈살이 찌푸려지며 ‘윽’하는 곡소리가 나왔다. 나는 바로 물을 마시러 뛰어갔다. 그 맛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수많은 단맛이 내 혀 끝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 맛은 도통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이야 크고 많다는 사실이 꼭 좋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엔 무언가 사라지기 보다 새로움으로 채워지는 순간이 더욱 많았고, 앞날에 대한 걱정보다 기대가 컸다. 아이언맨을 보고 난 후,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나는 커서 군수업자가 되어서 세상을 지킬 거야’라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하지도 않을 소리를 참으로 많이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를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났고, 그 결정들이 하나둘 내 어깨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런 삶의 변화는 많은 것을 가지려 애를 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좋은 삶은 많이 채우려 애를 쓴다 해서 얻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고리타분한 깨달음 이야기는 덮어두고, 이쯤에서 매체에 나온 음식 중 기억 남는 음식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작품에서 만난 음식 중 가장 달콤했던 음식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나온 라면이다. 한 봉지면 하루 나트륨 권장량은 손쉽게 채우는 짜디짠 라면이 대체 어떤 면에서 달다고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굳이 라면에 당류가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면, 신라면 한 봉지에 4g 들어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통상적인 의미에서 라면은 달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맛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단맛이 지닌 이미지를 들여다 본다면 그 의미를 조금 엿볼 수 있다. 단맛은 흔히 설렘, 기쁨 등의 밝은 감정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지닌다. 단맛의 느낌은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주는 풍습 - 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 만 봐도 알 수 있다. ‘봄날은 간다’ 속 라면은, 비록 우리의 혀 끝으로는 단맛을 느낄 수 없는 음식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단맛 못지 않은 달달한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라면 먹을래요?’ ‘봄날은 간다’ 속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와 함께 하는 작업을 마친 후, 집까지 바래다 준 상우에게 던진 대사이다. 표면적으로는 그저 라면을 먹을 생각이 있느냐는 말이지만, 그 속뜻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들 알 것 같다. 그 이후 은수의 집에서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와, 재밌는 이야기 해보라고 하니 자기는 원래 썰렁하다는 상우의 말에 ‘재밌다’라고 툭 던지는 은수의 모습은, 이 ‘라면’ 그냥 ‘라면’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이 영화는 짜디짠 '라면'이라는 단어에 달콤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 했다.
여기에서 내 글이 끝난다면 앞서 굳이 구구절절 단맛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라면 먹을래요?’ 장면만 알지만, 라면은 이 이후에도 영화에서 등장하며 은수와 상우의 사이가 변화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같이 라면을 먹었던 둘은 서로를 사랑하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마음은 처음과 다르게 조금씩 변해갔다. 점차 서로에게 무뎌지고, 마음 속에 상대에 대한 의심 또한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라면을 먹으며 상우는 은수에게 김치 담글 줄 아느냐고 묻는다. 못 담글 것 같으냐며 은수가 되묻자, 상우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서 가족에게 인사하러 가자는 말을 한다. 그러자 잠시 말이 없던 은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고 말하고, 이런 은수 앞에서 상우는 내가 담가 준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시선을 회피한 채 라면을 먹는다. 이 복잡미묘한 장면 속에서, 라면은 처음 두 사람이 사랑을 느꼈던 순간 먹었던 라면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후 자연스레 둘은 조금씩 멀어지고, 처음의 의미를 잃어버린 라면은 이제 부정적인 의미로 변해버린다. 함께 하던 일정은 점차 끝나가고, 업무를 마친 둘은 차 안에서 말다툼을 한다. 그 이후 은수 집 앞에 도착하자, 일이 있어서 어디 가보겠다는 상우에게 은수는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 라고 말한다. 그러자 상우는 은수 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조심해, 라며 화를 낸다. 라면은 처음의 달콤함을 잃어버린 데에 그치지 않고, 비하의 의미로까지 변해버렸다. 라면으로 시작된 사이가 김치를 나누어 먹으며 함께 라면을 즐기는 사이가 되길 바랐지만, 그 끝은 라면만도 못한 사이였다.
‘봄날은 간다’는 현실적이다. 뜨거웠다가 얼음처럼 식어버린 사랑을 이처럼 건조하게 그려낸 영화는 드물다. 그 건조한 느낌, 특히 은수에게 묻어나는 그 느낌은 어린 나로 하여금 은수를 나쁜 여자로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매해 다시 볼 때마다 조금씩 은수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퍼센트에 따라 커지기를 바랐지만 기대를 저버렸던 단맛처럼 인간관계는 점점 크고 짙어지는 마음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의 관점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은수가 나쁜 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단맛 뒤에 숨었던 쓴맛을 보자 정수기 앞으로 도망쳤던 어린 시절과 다르게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받아 들이는 덤덤한 태도가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했기 때문일까?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고사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와 반대로 단 것이 다하자 쓴 것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물론 그 또한 다하면 단 것이 올 수도 있지만, 오지 않은 채로 내내 지워지지 않을 쓴맛을 남길 수도 있다. 아니, 뒤늦게라도 단 것이 찾아오는 순간보다 쓴 것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맴도는 나날이 더 많았다. 단맛이 나를 속이고 던져 놓은 쓴맛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에도 그저 그 상황을 받아 들이는 것은, 암만 물을 들이켜도 가시지 않은 채 입안에 고여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1) | 2023.01.08 |
---|---|
매해 돌아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 (0) | 2022.07.05 |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 <반짝이는 박수 소리> (0) | 2022.04.15 |
(미완성) 들어가는 말 (0) | 2019.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