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몸이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 날이 좋은 날 감기에 걸리면 서러움은 배가 된다. 팔다리는 기운이 없이 축 늘어지고, 낯빛은 누렇게 변한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듯 세상은 어지러이 흐트러지고 이마는 지끈지끈 뜨거워진다. 손에 쥔 리모컨을 까딱거리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한두 시간 보고 나면 어느새 질리기 마련이다. 환한 밖을 바라보며 거실에 누워만 있는 것도 서러운데 이따금 들리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화마저 돋운다. 그러게 몸 관리 좀 하지 그랬어. 넌 발이 차가우니까 양말을 꼭 신어야 해. 너는 혈액순환이 안 되어서 걱정이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집안을 울린다. 때로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볼멘 소리로 저항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어차피 우리 집에서 어머니의 잔소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겨운 하루에 지쳐 갈 때쯤 점심에 먹은 약 기운이 돌아 눈이 스르륵 감긴다. 그리고 눈을 떠보면 저녁이다. 이런 날 해 지는 저녁 하늘은 바라보면 홀연히 외로워진다.
나는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 식당도, 영화관도, 미술관도 혼자서 간다. 이런 생활이 일상이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혼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버스 정류장에 앉는다. 기분이 좋은 날엔 혼자 파스타를 파는 식당에 가서 까르보나라를 시켜 먹는다. 영화관에 가면 늘 구석진 가장자리 좌석을 예매하고 팔을 의자 손잡이에 기댄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 앞에 멍하니 서있는다.
이렇게 사는 가장 주된 이유는 편안함이다.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더라도 혼자 활동하면 어떤 볼멘 소리도 듣지 않는다. 밥을 먹고 대뜸 30~40분을 내 멋대로 걸어도 혼자라면 괜찮다. 내 취향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일도 없고, 남의 취향을 내가 강요 받을 일도 없다. 불현듯 영화가 보고 싶을 때 트레이닝복만 입고 나가도 되고, 난해한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마음껏 가도 되고, 작품 앞에 10 여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된다. 누구 하나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픈 날이면 이렇게 혼자 지내는 삶이 너무 서럽다.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픔이지만 아픔에 익숙해지면 점차 외로움과 서러움이 물밀 듯 밀려온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보다 내 가슴 한 켠에 차오르는 답답한 마음이 더 먼저 느껴지고, 콧물보다는 눈물이 더 생각난다. 누가 내 곁에서 위로해주었으면, 다독여주었으면, 보듬어주었으면, 안아주었으면 그러면 조금은 덜 아프지 않을까. 아파도 그래도 이겨낼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내 품은 허전하다. 몸져 누운 뒤 천장을 바라보며 수많은 그리움을 그려 놓고 하나하나 세어 본다. 아무리 세어 봐도 줄지 않는다. 홀수의 방은, 홀수의 몸은, 홀수의 마음은 결국 외롭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요리를 하는 어머니께 곧 다 괜찮아질 거야 라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다 괜찮아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곧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보면 걱정하는 마음이라도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어머니가 퇴근길에 사온 딸기를 먹었다. 달다. 너무 달아서 슬펐다.